내 인생 게임은 메이플스토리다. 8살, 소꿉친구의 손에 이끌려 접하게 된 메이플은 23살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추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에반이라는 신직업이 나왔을 때였다(사실 그게 메이플의 첫 경험은 아니었지만,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에반이 출시된 당일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에반을 생성했고, 아빠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려 멀고 먼 길을 걸어 포탈을 탔다. 그리고 아빠와 스텀프가 있던 맵에서 엄청난 인파로 인한 렉을 경험하곤 컴퓨터를 껐다. 그대로 에반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그 후 돼지를 잡고 삼겹살을 파밍하고, 건초더미를 때려 건초를 얻었다. 그 이후의 에반에 대한 기억은 없다.
말고도 다양한 기억이 있다. 시그너스 기사단을 키울 당시 티구르를 잡으며 1차 전직을 하고, 메이플 월드 행 배를 타야 하는데 실수로 오르비스 행을 타곤 너무 강했던 픽시 때문에 마을을 탈출하지도 못했던 기억. 뱃삯도 없어 마을의 박스를 때려 짤짤이를 모으다 결국 포기하고 캐삭했었던 기억이 난다. 또 모험가 해적을 키우며 돼지의 해안가에서 사냥을 하고, 마을에선 수영도 하고 노틸러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아마 검은 마법사 업데이트 때, 난 그런 업데이트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마을 위치와 길이 바뀌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또... 지금 60레벨에 갈 수 있는(지금은 누구도 가지 않는) 버섯의 성 테마던전은 옛날에는 30레벨 테마던전이었는데, 지금 버섯의 성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조금 실망스럽기에... 예전의 스토리가 그립기도 하다.
또, 전사로 1차 전직을 하면 스텀프를 200마리인가 잡아야 했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서 친구들끼리 전사로 전직하면 망캐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슬리피우드를 탐험하는 것도 좋았다. 부적을 하나씩 붙이며 들어가다 보면 완전히 분위기가 반전되는 신전이 나왔다. 특히 그 안쪽에서는 코믹 메이플스토리의 예쁜 여캐 주카의 종족인 와일드카고가 나와 더욱 신기해했다.
월묘와 떡국떡을 파밍하던 기억, 황금 단풍잎 등의 기억도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또 사람들이 가득 찼던 자유시장의 기억도. 사실 나는 그때 당시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금전 감각이나 밸런스, 템세팅 등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메이플 월드를 탐험하는 것이 나의 주된 재미였다. 그래서 아쉬운 건 주사위를 굴렸던 기억이 없다. 44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아예 기억에 남지도 않았나 보다. 또 오르비스에 납치된 기억은 있지만 지방본에 납치된 기억은 없다. 아쉽다...
이처럼 어릴 때, 메이플은 내게 게임이라기보다는 세계였다.
'휴메는 있어도 탈메는 없다'라는 말이, 나에겐 평생을 걸쳐 적용되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된 나는 메이플2를 오픈런하였고, 역시 메이플을 플레이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역시 메이플을 플레이했고, 대학생이 된 나는 역시 메이플을 플레이했다.
내가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메이플이 내게 세계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메이플이 게임이라는 과정을 깨닫는 데에서 출발했다.
19살, 친구들이 대학 입시를 열심히 준비하던 때에 나는 다시 한 번 메이플에 빠져들었다. 이때는 그 전과는 달랐다, 템세팅에 대해 공부하고, 스토리 전개와 보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용돈을 털어 '에픽 둘둘'을 맞췄다. 이때 처음으로 무통사기로 경찰서도 가봤다. 세트효과, 주스탯, 보공, 방무 등 다양한 수치에 관심을 두게 됐으며, 고스펙 선발대 비제이들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아이템들은 게임사의 상품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건 스무살이 되곤 조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환불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관심가졌던 모든 숫자들은 게임사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무렵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레 메이플을 접었다.
게임이 게임사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득충이었다. 처음에는 코강, 이벤링, 에픽둘둘에 대한 공략 영상을 만들던 사람이었지만, 점차 넥슨의 영업 방식이 가진 문제점이나 게임의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꼭 현실 세계를 이루는 물리 법칙을 처음 알게 된 것 처럼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 또 도움이 된 것은 꿀벌오소리의 길마를 맡으면서였다. 우습게도, 20살이 되며, 환불 사태를 겪으며 접은 메이플은 2022년의 나에게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길마 경험은 새로웠다. 비록 그렇게 큰 길드는 아니었고, 오랜 기간 길드를 맡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천천히 저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곳의 사람들이 좋아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다. 업데이트 정보를 나르기 위해 인벤 10추글을 읽기 시작했으며, 길드 내에서 자체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메이플을 계속 재밌어할지를 고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이플스토리는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던 그 당시, 길드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며 메이플은 내 세계에 한발짝 더 가까워졌다. 길드를 이끌던 경험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길드는 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은 시간과 돈을 쓰는 것에 지쳤으며, 길마(이면서 막내)였던 나는 길드원들이 게임을 접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계속 인생을 갈아넣어 시간과 돈을 써 달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이플이 시간과 돈을 많이 잡아먹는 게임이었던 탓에, 우리 길드는 망했다. 그리고 나와 남자친구가 리부트로 넘어오고 나서, 같은 이유로 메이플도 한 번 망했다(현재진행형이다). 인벤에서는 게임의 개선안들(^공책패치^)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강원기 메인디렉터의 소신발언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게임의 구조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내가 게임을 게임으로 보는 눈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메이플의 침체기에 다른 할만한 게임 없나 하고 살피던 중, 블루 아카이브를 설치했을 때였다. 청휘석으로 학생들을 모집하는데, 하단의 '모집 포인트'를 보자마자 '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게 됐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