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에 대한 여러 영상을 보고, 세미나를 듣고, 책을 읽었지만 게임 기획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고, 게임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하고, 기획의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 정작 게임이란 무엇인지 정의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애매모호했다.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수학을 예로 들면, 아무리 선형대수를 배우고 인테그랄의 여러 형태를 관찰한대도, 수학이 정확하게 어떤 의의를 갖는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의내리지 못했다면 나는 수학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수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 수학은 과학의 언어이다. (과학보단 언어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게임이란 무엇인가? 세미나 2강에서 '게임은 유의미한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시드 마이어의 정의를 좋아한다고 상원오빠가 그랬다. 나도 스스로 게임에 대해 정의내릴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정의하기론, 게임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세계이다.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세계 창조의 영역이다.
게임 기획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최근 발매된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놀라운 기획적 아이디어는 무엇이 있는지, 플레이어가 NPC들에게 몰입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의 방법론들은 모두 세계 창조 원리를 담고 있다.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 몰입, 자유도(젤다의 삼각형), 퀘스트, 장벽, 성장, 선택 ...)
+ 이에 대한 방법론들이 게임 기획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방법(피드백 루프 등)을 차용할 수도 있고, 아예 새로운 것을 question mark를 통해 만들어낼 수도 있다(배그 플탐으로 인한 lose의 경험).
++ 이를 공부하는 방법(기획자 준비 단계) : 역기획서를 써 보기. 이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습관.
게임에서 선택은 중요하다. 게임 내에서, NPC를 쏠지 살릴지, 사냥을 할지 보스를 돌지, 윗잠을 돌릴지 팔고 완제템을 사올지 등의 선택은 매 순간 일어난다. 어떤 것들은 재미(스토리의 탐구, 여행, ...)의 영역이고 어떤 것은 효율(성장)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보다 더 중요한 선택이 있다. 이 게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엔딩을 볼 때까지 시간을 투자할 것인지, DLC를 살 것인지, 도감이나 업적을 모두 깰 것인지, 이 게임을 할 것인지 저 게임을 할 것인지 등이다.
게임은 세계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2023년 대한민국이라는 세계와는 다른 점이 있다.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을 선택해서 살고 있지 않다.(이민? 죽을지 말지의 선택? 제쳐두고...)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게임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세계를 살 수 있다. 다양한 세계를 살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의 재화인 시간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할지, 어떤 세계를 살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좋은'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플레이어들로 인해 여러 게임 중 이 게임이 선택받는다는 것이고, 살고 싶은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이 살고 싶은 세계란 GTA의 세계관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동숲같은 삶을 살고 싶다 등의 얘기가 아니다. 때로는 challenging해서, 힐링이 되어서,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했다거나, 또는 게임을 사랑하게 되어서 그 세계를 선택할 수 있다. (게임은 현실세계와 달리 귀찮은 것들을 버리고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배고프지 않게 된다. 할일이 쌓였는데 굳이 음식을 챙겨 먹고 잠을 자지 않아도, 즉 귀찮을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어떤 게임들에서는 이러한 불편함을 일부러 제공하기도 한다. 배고픔 뿐만 아니라, 우리는 법의 제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게임의 세계를 맛있게 만든다.)
+ 게임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컴퓨터 내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길드원이나, 자랭을 같이 돌릴 친구 등. 게임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현실 세계를 포함한 다른 세계로부터 존재하는 사람들 간의 결속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왜 게임인가? 창작자의 창의로 인해 음악이나 영화 등에서 멋진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체험자 입장에서 음악이나 영화 등은 누군가가 창조한 세계를 엿보는 것일 뿐, 내가 직접 그 안에서 숨쉬기란 불가능하다.
+ 그냥 재밌는 생각. 게임은 장르를 통해 세계의 성격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가장 발전된 게임은 가장 자유도가 높은 현실세계의 모방 형태로 나타나는가? 애초에 게임의 영역에서 관찰했을 때, 현실세계는 마법도 못 쓰고 총도 못 쏘고 다니는 자유도 낮은 게임이네... 그렇다면, 가장 발전된 게임은 꿈 같을까?
게임이 세계라면, 그냥 현실세계를 살지 왜 게임을 하는가? 개인은 모두 인정받고픈 욕구가 있다. 모두가 성공하고 싶어하고, 모두가 사랑받고 싶어한다. 모두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해내고 싶어한다. 게임이 이를 만족시킨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내 옆의 사람도, 그 사람의 인생의 주인공은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도덕의 문제이고, 사회화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이는 모두가 성공할 수 없고 모두가 모두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래서 게임의 세계는 훨씬 편리하다. 게임 내의 모든 NPC들이 오로지 플레이어만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치켜세우고, 사랑한다. 간혹 게임 디자이너들에 의해 잘 설계된, 적당히 어려운 적들이 나타나지만, 애초에 플레이어가 그것을 극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든 것이 플레이어를 위해 이기적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것이다. 얼마나 원색적인 즐거움인가!
결국 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이 세계들은 플레이어의 선택을 받기 위해,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아주 치밀하게 짜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는 평을 들을 것이다.
+ 소설의 등장인물은 절대 작가보다 똑똑할 수 없다. 게임 기획자들은 똑똑해야 한다. 플레이어의 모든 욕구를 예상하고 충족시켜주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가끔(대개) 게임 기획자들이 플레이어들보다 게임을 잘 하지 못할 수 있다. 에이징커브 이슈...) 또한, 플레이어의 욕구가 게임의 방향성에 반한다면(경제를 악용하고, 치트를 쓰거나, 부주대리현거래를 하거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재를 해야 할 것이다.
++ 메이플이 현거래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세계 유지에 더 적합하기 때문인가? 편리하네...
+ 지뢰찾기나 섯다 같은 훌륭한 게임들은 세계가 아닌가? 세계라기보단 퍼즐에 가까운데...